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핏케언 제도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핏케언 섬과 헨더슨 섬엔 원래 [[폴리네시아인]]들이 살고 있었으나 15세기경에 모두 [[프랑스령 폴리네시아]] 등지로 이주해 버려졌다. 이후 1767년 영국인이 다시 이곳을 발견했고 1790년까지는 무인도였으나 [[바운티호의 반란]]이 일어난 뒤에 반란자 10명이 타히티 원주민 남녀 17명을 데리고 숨어 살았던 곳이다. 영국 해군은 반란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남태평양 섬을 뒤졌지만 핏케언 섬은 해도(Chart)에 아직 안 나타나 있었기 때문에 가지 않았다. 이후 반란자의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했다. 핏케언 제도에 정착한 반란자들은 같이 간 원주민 남자들을 노예로 부려먹었기 때문에 몇 년 후 이들이 폭동을 일으켜 서로 싸우고 죽인 끝에 성인 남자 대부분은 사망했으며, 1808년 미국 [[포경선]] 토파즈 호가 이들을 발견했을 때는 성인 남자 1명(존 아담스)에 여자 8명, [[어린이]] 19명만 있었다. 이 소식은 1810년, 영국에 전해졌는데 이때는 [[나폴레옹 전쟁]] 탓에 정신 없던 시기여서 군함을 보내 잡아들일 여력이 없었다. 1814년에 영국 군함 두 척이 다시 핏케언에 상륙, 조사하여 보고서를 올렸는데 해군성은 반란자들이 존 아담스를 제외하고는 다 죽었으므로 그냥 놔두기로 하고 아담스는 사면했다. 반란 주도자인 플레처 크리스천은 1793년에 이미 죽었는데 존 아담스는 그도 살해당했다고 진술했다. 1829년에 영국이 이곳을 자국의 영토로 선언하면서 정식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. 1856년 섬의 인구가 증가하자 일부 섬 주민들은 무려 6000여km나 떨어진 [[노퍽 섬]]으로 이주했고 [[뉴질랜드]]로 이주한 경우도 있다. 그 뒤로 영국의 영토이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영국의 지배가 제대로 미치지 못했고 섬 주민들은 사실상의 완전 자치 사회를 이루어 살았다. 소설 [[모비 딕(소설)|모비 딕]]과 영화 [[하트 오브 더 씨]]의 소재이자 위의 역사와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1820년의 [[에식스#s-4|에식스 호]] 사건에서 선원들이 표류하다 도착한 섬이 헨더슨 섬이다. 당시 선원들은 이 섬에서 4개월 가까이 머무르다 구조됐는데 선원 중 한 명은 이 섬에서 해골을 발견했다고 보고한다.[* 하트 오브 더 씨에도 묘사되어 있다.] 나중에 조사한 결과 실제로 5~6명의 해골이 발견됐으며 그중에는 어린 아이의 것도 있었는데 오래전 폴리네시아 원주민의 것임이 밝혀졌고 아마도 인근에서 조난을 당해 이 섬으로 왔다가 그대로 죽은 것으로 추측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